타로카드 속 실제 존재하는 장소 #2 - [ 경회루 편 ] 입니다.

경회루의 역사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34.4m), 측면 5칸(28.5m)이다.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1395년으로, 이때 경회루 주위에 작은 연못이 조성되었고, 1412년(태종 12) 태종의 명에 의하여 큰 방지를 파고 경회루를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방지의 크기는 동서가 128m, 남북이 113m인데, 못 안에 방형의 섬을 만들고 거기에 누를 세웠다. 이 섬에 들어가는 3개의 석교(石橋)가 있는데, 모두 하엽동자(荷葉童子)에 회란석(廻欄石)을 섬 주위까지 돌렸다.
경회루는 중루(重樓), 팔작지붕의 2익공(二翼工) 집으로, 누마루를 받는 48개의 높직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외진주(外陣柱)는 방형석주(方形石柱)이고 내진주(內陣柱)는 원형석주(圓形石柱)이다. 기둥 둘레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아졌는데 그 체감률이 경쾌하여 조화적이다. 이 석주 위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중루를 만들었는데, 마루 밑은 우물천장을 하여 단청을 하였고, 위쪽 마루는 외곽 퇴간부분이 가장 낮고, 그 다음 고주(高柱)와 내고주(內高柱) 사이가 1단 높으며, 내고주 안의 깊은 오간(奧間)이 또 1단 높게 만들어졌다. 이는 외국 사신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 때 품계(品階)대로 앉는 자리 구분이다.
고주와 내고주 사이에 하방을 돌리고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아서 문을 내리면 방이 되게 되어 있다. 마루 끝 바깥 기둥에 낙양각이 장식되고 기둥 밖으로 계자난간(鷄子欄干)이 아름답게 설치되어 있고, 이 난간은 시각적(視覺的)으로 높은 기둥을 짧게 보이도록 끊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지붕이며, 용마루 끝에는 취두(鷲頭)가 설치되었고 추녀마루 위에는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이 설치되었다.
용마루를 높여 웅대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지붕의 물매가 급하고, 측면 지붕에는 큰 합각의 삼각형이 생겼는데 건물 평면이 커서 시각적으로 조화되어 있다. 이 집은 건축기술상 너무 커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잘 처리하여 견고하게 지었다. 한국 목조건축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이 누각은 화려한 단청 그림자가 연못 속에 드리워지면 그 영상이 또한 매우 아름답다. 연못은 뱃놀이도 했던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복궁 경회루 [Gyeongbokgung Gyeonghoeru, 景福宮 慶會樓] (두산백과)
경회루 타로카드 해설
궁궐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가히 꽃으로 묘 사되는 경회루는 태종 때에 지어졌다.
경복궁 서쪽의 땅이 습한 것에 착안하여 큰 연못을 파고 그 위에 누 각을 지었으며 돌기둥에 용과 화초를 새겨 넣어서 물 속에서 마치 용이 헤엄치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여 이 에 탄복한 외국의 사신이 남긴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 이름이 지어진 데는 의미가 있는데 아무리 나라의 군주라고 하더라도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이 첫 번째 조 건이라 해서 군신 간에 덕으로써 서로 만난다는 것으 로 경회라는 뜻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경회루에서 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해서도 더 없이 좋은 장소였으나 단종이 세조에게 옥새를 넘겨 준 비극의 장소이기도 했고 연산군이 흥청을 만들어 후대에 흥청망청이란 말의 시초가 된 곳이기도 하다.
타로카드 속 실제 존재하는 장소 #2 - [ 경회루 편 ] 입니다.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34.4m), 측면 5칸(28.5m)이다.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1395년으로, 이때 경회루 주위에 작은 연못이 조성되었고, 1412년(태종 12) 태종의 명에 의하여 큰 방지를 파고 경회루를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방지의 크기는 동서가 128m, 남북이 113m인데, 못 안에 방형의 섬을 만들고 거기에 누를 세웠다. 이 섬에 들어가는 3개의 석교(石橋)가 있는데, 모두 하엽동자(荷葉童子)에 회란석(廻欄石)을 섬 주위까지 돌렸다.
경회루는 중루(重樓), 팔작지붕의 2익공(二翼工) 집으로, 누마루를 받는 48개의 높직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외진주(外陣柱)는 방형석주(方形石柱)이고 내진주(內陣柱)는 원형석주(圓形石柱)이다. 기둥 둘레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아졌는데 그 체감률이 경쾌하여 조화적이다. 이 석주 위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중루를 만들었는데, 마루 밑은 우물천장을 하여 단청을 하였고, 위쪽 마루는 외곽 퇴간부분이 가장 낮고, 그 다음 고주(高柱)와 내고주(內高柱) 사이가 1단 높으며, 내고주 안의 깊은 오간(奧間)이 또 1단 높게 만들어졌다. 이는 외국 사신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 때 품계(品階)대로 앉는 자리 구분이다.
고주와 내고주 사이에 하방을 돌리고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아서 문을 내리면 방이 되게 되어 있다. 마루 끝 바깥 기둥에 낙양각이 장식되고 기둥 밖으로 계자난간(鷄子欄干)이 아름답게 설치되어 있고, 이 난간은 시각적(視覺的)으로 높은 기둥을 짧게 보이도록 끊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지붕이며, 용마루 끝에는 취두(鷲頭)가 설치되었고 추녀마루 위에는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이 설치되었다.
용마루를 높여 웅대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지붕의 물매가 급하고, 측면 지붕에는 큰 합각의 삼각형이 생겼는데 건물 평면이 커서 시각적으로 조화되어 있다. 이 집은 건축기술상 너무 커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잘 처리하여 견고하게 지었다. 한국 목조건축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이 누각은 화려한 단청 그림자가 연못 속에 드리워지면 그 영상이 또한 매우 아름답다. 연못은 뱃놀이도 했던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복궁 경회루 [Gyeongbokgung Gyeonghoeru, 景福宮 慶會樓] (두산백과)
궁궐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가히 꽃으로 묘 사되는 경회루는 태종 때에 지어졌다.
경복궁 서쪽의 땅이 습한 것에 착안하여 큰 연못을 파고 그 위에 누 각을 지었으며 돌기둥에 용과 화초를 새겨 넣어서 물 속에서 마치 용이 헤엄치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여 이 에 탄복한 외국의 사신이 남긴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 이름이 지어진 데는 의미가 있는데 아무리 나라의 군주라고 하더라도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이 첫 번째 조 건이라 해서 군신 간에 덕으로써 서로 만난다는 것으 로 경회라는 뜻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경회루에서 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해서도 더 없이 좋은 장소였으나 단종이 세조에게 옥새를 넘겨 준 비극의 장소이기도 했고 연산군이 흥청을 만들어 후대에 흥청망청이란 말의 시초가 된 곳이기도 하다.